골목을 살린다는 말, 정말 가능한가요?

골목을 살린다는 말, 정말 가능한가요?

골목이 '죽었다'고 말해야 도시재생이 시작된다

‘도시재생’이라는 단어에는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살린다’는 건 곧, 지금은 ‘죽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이 도시재생의 대상은 대부분 ‘골목’입니다. 그러나 묘하게도, 정책과 사업이 들어간 골목들 중 ‘살아난 곳’은 드뭅니다. 살아난 듯 보이다가, 오히려 더 빨리 사라지곤 했습니다.

왜일까요?

지금부터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재생이 왜 골목을 살리지 못하는지, 그리고 진짜 골목을 살리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해체: 아파트 공화국이 된 동네

서울의 오래된 골목은 대부분 단독주택이나 다가구가 빼곡히 들어선 구조였습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마을이 형성됐고, 주민들은 그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골목은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빠르게 해체되었습니다.

좁고 낡은 골목은 사라지고, 대신 널찍한 도로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물리적 해체, 즉 공간 자체가 사라진 겁니다. 그리고 이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골목은 단지 건물과 길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의 관계와 시간이 쌓인 공동체의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해체: 돈의 냄새가 골목을 삼켰다

드물게 살아남은 골목은 또 다른 방식으로 해체됩니다.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붙으면서 말이죠.

종로구 익선동이나 용산구 해방촌, 경리단길처럼 예스러운 매력을 가진 곳엔 사람들의 발길이 몰렸습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높은 월세와 프랜차이즈를 불러왔습니다.

사람이 몰리면 건물주는 더 높은 임대료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소상공인은 나가고, 대신 더 큰 자본을 가진 브랜드들이 들어옵니다. 골목은 점점 똑같은 간판으로 채워지고, 그 특색을 잃게 됩니다.

도시재생이 골목을 살리지 못하는 이유

정부는 이런 골목을 지키기 위해 ‘골목형 상점가’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2020년부터는 2000㎡ 이하에 30개 이상의 소상공인 점포가 밀집해 있으면 지자체가 해당 구역을 지정하고 지원할 수 있게 됐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 온누리 상품권
  • 시설 현대화
  • 홍보 프로모션 행사

이런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세입자 보호'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계약 갱신 요구권이 보장된다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죠. 결국 ‘가게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 구조는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골목은 어떻게 달랐을까?

한번 시선을 바꿔봅시다.

프랑스 파리는 어떻게 골목을 지켰을까요?

파리시 산하의 ‘세마에스트(SEMAEST)’는 지역 수공업과 상점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민간 합작 회사입니다. 이들은 ‘공간’을 직접 매입하고, 그 공간에 어떤 ‘업종’이 들어올지를 제한합니다.

핵심은 두 가지 정책입니다.

  • 우선매수권 – 지정된 지역에서 건물이 매각되면, 시가 가장 먼저 매입할 권리를 가짐
  • 용도전환 금지 – 1층 점포를 카페에서 옷가게로 바꾸는 것조차 불허

이런 정책은 골목을 경제논리가 아닌 도시 공동체의 유산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합니다.

골목은 '주거지'이자 '생업의 터전'이다

우리에게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 산업 구조 보호를 위한 제도이지, 골목의 ‘삶’을 위한 장치는 아닙니다.

파리는 정육점, 빵집처럼 실제 지역 주민에게 꼭 필요한 업종에 낮은 임대료를 제공합니다. 이런 시스템은 단순히 ‘상권’이 아닌 ‘삶의 공간’을 지키기 위한 접근입니다.

즉,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골목을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합니다.

정책은 왜 반복해서 실패하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골목상권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골목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바뀌기엔 너무 많은 실패와 방치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 지금까지의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 누가 골목을 떠나게 만들었는지
  • 어떤 구조가 변화 없이 반복되고 있는지

그 해답을 찾기 전까지, 골목은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 공간은 시간과 기억이 담기는 그릇이다. 철거와 리모델링만으로는 골목을 살릴 수 없다.
  • 골목은 상업이 아니라 생업이다. 정책은 돈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 지키는 방식은 돈이 아니라 구조다. 우선매수권, 용도제한, 업종 보호 등 프랑스처럼 체계적 제도가 필요하다.

당신은 어떤 골목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혹시 당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골목이 있나요? 그 골목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나요?

지금의 골목은 ‘재생’이 아니라, ‘보존’과 ‘관리’, 그리고 ‘공공적 가치 회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의 도시와 경제를 위해, 이제는 진짜 골목을 살릴 때입니다. 당신이라면, 그 첫걸음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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