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만 키우는 반도체 전략, 대한민국 전력망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반도체는 국가산업인데, 왜 지역은 상처받고 있나
7월22일, 기록적 폭우가 지나간 뒤에도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는 땀 흘리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전북 정읍, 완주, 무주, 진안 등 8개 시군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구호는 이것이었습니다.
“주민 동의 없는 송전선로 계획, 백지화하라!”
그들의 분노는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수도권에 건설될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지방의 전력을 끌어오는, ‘불균형의 구조’에 대한 항의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전력망과 산업 전략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전북에 세워지는 것은 송전탑, 용인에 들어서는 것은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360조원, 122조원을 투자하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총 10GW 전력을 필요로 하는 이 초대형 산업단지를 위해 정부는 LNG 발전소를 건설하고, 3.7조원 규모의 초고압 송전망을 남쪽에서 수도권으로 잇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이 송전망이 전라북도 지역을 관통한다는 점입니다.
원전, 풍력 등 발전원이 있는 비수도권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오기 위한 구조에서 지역은 오롯이 ‘피해지역’이 됩니다. 고압 송전탑은 지역 환경과 건강을 위협하지만, 그 전력의 혜택은 수도권 기업이 가져갑니다.
밀양 이후 10년,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는가?
10여 년 전 ‘밀양 송전탑 사태’는 지역 주민의 생존권과 정부의 국가사업이 정면 충돌한 대표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강경 대응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해왔습니다.
전북 송전망 사태는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변전소 예정지 통보, 송전탑 노선 일방 지정, 주민의견 미수렴, 회의록 비공개 등 절차적 정당성마저 부족한 행정은 “왜 여전히 우리가 밀양을 반복해야 하느냐”는 물음을 남깁니다.
분산에너지법과 반도체 국가산단은 정면충돌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의 핵심이 ‘지산지소(지역 생산·지역 소비)’임에도 불구하고, 초고압 송전망 건설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 전략에 맞춰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역 주민이 싸게, 수도권은 비싸게 전기를 쓰도록 하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역시 분산형 구조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인데, 현실은 기업이 고급 인력 확보를 이유로 수도권에만 모이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제도와 실제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송전망 논란의 본질은 ‘균형발전’과 ‘시민 참여’
이번 갈등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 하나는 수도권 중심 산업전략에 대한 지역의 문제 제기이며,
- 다른 하나는 ‘절차적 투명성 부족’입니다.
입지선정위원회 구성의 비공정성, 주민 모르게 결정된 경과대역, 회의록 비공개 등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기본을 흔들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망 사업자가 아닌 중앙정부가 송전망 계획을 세우고, 계획 초안부터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합니다. 반면 한국은 한전이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실행하는 구조입니다.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방식, 독일은 어떻게 다를까?
독일: 전력망 계획 초기부터 주민 참여 → 권역 담당자 운영 → 의견 수렴 → 보상금 추가 지급 제도 도입
한국: 입지선정위원회 비공개 → 주민 미참여 → 정보 차단 → 갈등 심화
독일은 망 경로 결정 이전에 국가 단위의 계획(수요예측-노선-환경영향)을 세우고, 이후 기업이 사업 주체가 됩니다. 이는 이해충돌을 예방하고,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한국도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싶다면 이런 구조적 개편이 시급합니다.
반도체와 전력망,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선택지는?
대한민국은 기후위기 대응, 전력 인프라 확충, 첨단산업 육성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려면 지금처럼 수도권만 키우는 방식으론 어렵습니다.
- 재생에너지는 지방에서 생산되고,
- 전력망은 수도권으로 끌려가며,
- 기업은 서울과 경기로 몰리고 있습니다.
이 구조가 계속된다면 지역은 에너지 산업의 ‘희생양’으로만 남고, 결국 산업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지방은 계속 희생해야 할까요?
지역 균형발전과 전력망 확충은 양립 불가능한 것일까요?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더 많은 송전탑을 세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지역과 함께 지속가능한 산업 전략을 만들 수 있을까?”입니다.
해결을 위한 2가지 제안
- 송전망 입지 결정 권한을 한전이 아닌 제3의 독립기구나 정부로 전환
- 독일식 ‘전력망 참여기구’ 도입 검토 필요
- 수요지 중심 전략 → 분산형 전력 생산 시스템으로 이행
- 기업에 지역 이전 인센티브 제공 + 송전비용을 포함한 전기요금제 확대
댓글
댓글 쓰기